본문 바로가기
정보

국회 폐쇄, 탱크 등장?.. 5·18 이후 45년 만에 비상계엄령

by 둥가둥가 2024. 12. 3.
728x90
반응형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현재의 국회내 여야 역학 관계와 정치 구도로는 더 이상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을 감안할 때 윤 대통령의 3일 발표는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 권력을 정지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인터넷에 떠도는 탱크.. 실시간 맞을까?



📸 국회 폐쇄, 비상계엄령.. 실시간 실제로 도로에서 발견되는 장갑차 탱크
https://tmdgmlabcd.tistory.com/m/53

📸국회 폐쇄되자 라이브키고 담 넘어서 국회 들어가는 이재명 -
👉🏻 https://tmdgmlabcd.tistory.com/m/52

계엄법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을 규정하고 있는데, 경비계엄은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돼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9일간, 10·26 사건 이튿날인 1979년 10월27일부터 1981년 1월24일까지 439일간 전국(제주 제외)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게 마지막이었다. 경비계엄은 1960년 4·19혁명 때와 1961년 5·16 군사반란 때 선포됐는데, 두 차례 모두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즉 경비계엄만 독자적으로 발동된 경우는 없는 셈이다.

당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계엄령에 대해 반발했다. 윤 대통령 발표 직후 한 대표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당 내에서도 반발이 터져나오면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문제에 결국에는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대표는 비상의원총회를 소집하며 대응에 부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모두 10번의 계엄령 선포가 있었다. 최초의 비상계엄은 1948년에 발생한 여순사건으로 10월 21일에 발효됐다가 1949년 2월 5일 해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이 일어나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출동시켜 학생 시위를 막도록 했다.


1961년 5월 16일에는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아침 9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4.19혁명으로 탄생한 장면 정권을 해체시켰다. 박정희 정권은 이후 1964년과 1965년, 1972년에도 계엄령을 선포했으며, 1979년 10월 16일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부산 지역에서 격화되자 18일 0시를 기해 부산 지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자 10월 27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980년 5월 17일에는 전두환과 신군부가 다시 한번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며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했다. 5월 18일부터 이에 저항하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기도 했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0월 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 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되었다.

반응형